2008년 08월 13일
생존신고......

2002년경에 끄적인 그림이나 하나 올려볼까 합니다........
붓펜으로 끄적인건데...저 글씨는 암만해도 쓴 기억이 없다는......범인은 역시 그 넘인가?
루**님의 캐릭터에대한 팬픽이랍시고 끄적인건데.....역시 괴발새발인 그림....ㅎㅎㅎㅎ
# by | 2008/08/13 20:37 | YoRoZU放談 (잡상) | 트랙백 | 덧글(3)

# by | 2008/08/13 20:37 | YoRoZU放談 (잡상) | 트랙백 | 덧글(3)


역시 칙칙한 글을 올리기 전에는 '좋은' 짤방부터인 법이죠 ........
'로리부터 누님까지'이지만......실은 누님 : 로리의 비율이 2 : 1 ......(뽀힛!)
그나저나, 시스터 에다를 맘에 들어하는게 제 주변에서는 아마도 저 혼자뿐인듯.........
(믿었던 옛 상사분은 알고보니 차이나 드레스 '하아하아派' 라고 하시질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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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문예춘추' 1974년 11월호에 게제된 다치바나 다카시씨의 '다나카 가쿠에이 연구 - 그 금맥과 인맥 '을 번역한(말이 번역이지 실제론 대전차 지뢰-혹은 항공 폭탄을 개조해서 만든 사기성 지뢰-급의 오역이 곳곳에 도사리고있는) 것입니다. 어디까지나 1974년의 그 텍스트를 번역(이젠 더 창피할 것도 없지??)한 것이므로 여기에 대해서 딴지를 거시면 참으로 '골룸'하오니......이 점을 유념해주시길(실은 쥔장이 무식하고 게으른건 아니고??)......
* 표는 클릭해서 보시길 권하고 싶군요.......클릭하시면 크고 알흠....아니아니...... 읽기 편안한 사이즈로 커집니다.
유령회사의 전화
이 회사의 대표 이사는 遠藤昭司(엔도 쇼지)씨로, 다나카 가쿠에이의 비서로 일했으며 일찍이 目白(메지로)의 다나카 저택을 확장할 적에 거기에 있던 12세대의 판잣집 주민들이 이주하려 하지 않고 있는 것을, 한 집 한 집 방문하여 料亭에 데려가거나, 보상금조의 거액을 제시해가며 설득하는 고생스러운 일을 1년 가까이 해낸 사람으로 유명하다. 엔도씨는 또 하나의 관련 회사인 新星企業의 이사직을 몇 번인가 맡은 적이 있으며 대부분 메지로의 다나카 저택에 붙어 있기에 No.2의 측근이라고도 일컬어진다. 다나카 패밀리의 핵심 인물(Key Person)인 것이다.
감사역은 田中利男(다나카 도시오). 다나카 가쿠에이의 사촌으로 그의 운전기사로 일하기도 했다. 메지로의 다나카 저택에 늘 대기하면서 신변의 잡다한 일들을 도맡아 처리하고 있으며, 다나카가 외유를 나갈 때에도 자신의 아내를 데리고 나가지 않을지언정 도시오씨는 꼭 데리고 나갈 정도의 측근이다. 여러 ‘관련 회사’의 임원으로 근무하는 등, 그 또한 다나카 패밀리의 주요 인물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회사가 작년 8월 다나카 저택을 떠났다. 새로이 옮긴 곳은 谷本村町. 그리고 올해 봄, 4억5천만 엔으로 증자를 하였다. 혹시 ‘유령회사’에서 그치지 않고 독자적인 활동을 시작하려는 것이 아닌가 싶어 전화를 걸어보았다.
「엔도 사장님 계십니까?」
「지금 안 계십니다.」
「다른 분은 안 계십니까?」
「아뇨, 한 분도 안 계십니다.」
「오늘만 그렇습니까?」
「아뇨, 늘 그렇습니다.」
「언제부터 그랬습니까?」
「글쎄요, 전 그저 전화를 받아서 메시지를 전달해 드릴 뿐이기에 아무것도 모릅니다.」
「실례지만 어디에 소속된 분이십니까?」
「福田組입니다.」
유령회사의 특징이라면 우선 전화가 없다던가, 있더라도 전화를 걸어보면 전혀 엉뚱한 회사에서 받는 것 외에 어떠한 회사연감에도 이름이 올라가 있지 않은 것, 택지건물거래 업자의 인가를 받지 않은 것, 기업 경영의 상식으로는 생각 할 수 없는 방식의 영업을 하고 있는 것 등을 들 수 있다. 東京ニューハウス의 경우 이상의 모든 조건을 충족시키고 있었다.
이 중에서도 전화번호를 빌려주고 있었던 福田組는 니가타현의 토건 업계 제일의 큰 손 가운데 하나였다. 수많은 계열 회사가 있고 그 대다수가 다나카 가쿠에이에게 정치 헌금을 하고 있었다. 그의 연고지 토착지원그룹의 중요한 일각이라고 할 수 있겠다.
결국 東京ニューハウス는 여전히 ‘유령회사’인 것으로 생각된다. 그렇다고 한다면 금년 봄에 있었던 증자는 東京ニューハウス명의로 된 다나카의 자산이 늘었다고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렇게 개인 자산 50억 엔을 탕진한 藤山愛一郎(후지야마 아이이치로)는 총리가 되지 못하고, 총리가 된 다나카 쪽은 되려 그 자산이 불어나게 된 것은 얄궂은 이야기일 것이다. 더구나 그 자금의 사용에 있어서는 후지야마씨보다 다나카 쪽이 훨씬 아낌없이 퍼부은 것을 생각한다면 다나카 측의 자금 수집 능력에는 그저 경탄할 따름이다.
여기서 자금의 사용 방식에 대해 짚어보도록 하자. 물론 정확한 숫자를 댈 수 있는 것은 ‘표면’상의 자금 쪽 뿐이다. 자민당의 자금의 사용 방식은 앞에서 그 장부를 인용한 것과 같이 ‘집행부’라는 이름이 여기저기 튀어 나올 뿐, 그 돈들이 어디에 어떻게 사용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알 도리가 없다. 그러나 정치단체들 개개의 지출은 좀 더 구체적으로, 돈을 건네받은 개인들의 이름까지도 기록되어있다. 지출의 내역은 한결같이 ‘조사비’, ‘조직활동비’, ‘기부’ 등의 명목으로 되어있다. 금전의 출납은 당비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꽤나 요란스럽다. 예를 들어 越山会의 5월 1일分을 살펴보면.
100万円 木村武夫
100万円 井原岸高
100万円 仮谷忠男
100万円 小淵恵三
100万円 小宮山重四郎
이런 식으로 전달되는 돈(조사비 및 조직 활동비)를 집계한 것이 표 (3)이다. 표(3)-I은 1964년부터 1970년까지의 7년간의 합계(越山会, 정치경제조사회, 재정조사회 등 3개 단체의 금전 출납이며, 국회의원만을 대상으로 함.)이며, 표(3)-II는 마찬가지로 국회의원에게만 지급된, 1971년 상반기부터 1973년 상반기까지의 2년 반 동안의 금액(5개단체-앞의 3개 단체 외에 경제사회연구회, 新 정경진흥회를 포함한 것.)을 합산한 것이다.


대충 간단히 훑어 본 것으로도 불어난 것은 다나카의 물적 자산뿐만이 아니라 인적 자산 또한 그렇다고 하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총재선거가 끼어있어서인지, 아니면 인플레이션의 탓인지는 몰라도 액수의 자릿수 자체가 틀리다고 하는 것을 곧장 눈치 챌 수 있을 것이다. 어디까지나 ‘표면’상의 자금인지라 타 파벌의 의원들에게는 한 푼도 돈을 건네지 않은 것으로 되어있다.
파이프는 야당에까지.......
하지만, 표(3)-III에 주목하기 바란다. 이것은 의원이 아닌 인물들에게 전달된 돈의 목록이다. 비서의 이름들이 주욱 나열되어있고 각각 1000만엔 단위의 돈을 받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물론 이것들은 ‘자네가 쓰고 싶은 대로 써도 좋네.’ 라며 준 돈이 아니라, ‘XX씨에게 전해드리게.’ 라고 지시를 받고 해당자에게 전달되었을 것들이리라. 즉, 이름이 드러날 경우 매우 입장이 난처해지는 사람들에게 전해진 돈이란 얘기이다.

다나카파는 표면상 중/참의원을 합쳐 86인밖에 되지 않으나, 다나카의 입김이 미치는(다시 말해, 돈을 건네받은) 잠재 다나카파는 각 파벌에 산재하여 (심지어는 후쿠다파, 미키파에도 존재한다고 하는) 그 숫자는 300인에 이른다고 알려져 있다. 이런 경우에 있어서, 돈을 받은 사람의 이름을 곧이곧대로 장부에 기록할 수는 없는 노릇일 것이다. 그게 바로 비서들이 거액을 수령하는 형식으로 되어있는 이유가 아닐까 생각된다.
이 중에 단체명이 두 개 나오는데, 각각 忠政会는 久野 忠治(구노 쥬우지), 修山会는 高鳥 修(다카토리 오사무- 두 사람 모두 중의원 의원)의 후원회이다. 또한 비서가 아닌 사람이 두 사람 등장하는 것을 발견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가운데 한 명은 앞에서 소개한 다나카의 친구 入内島 金一(이리우치지마 가네히토)이다. 그는 도쿄에 거의 붙어있는 일이 없고, 정계에도 거의 얼굴을 비치지 않는다. 아마도 명의를 빌려줬을 뿐일 것이다.
다른 한 명은 田中 勇(다나카 이사무)로 이 사람은 東急電鉄 부사장 및 東亜国内航空 사장으로, 経団連평의원직을 맡고 있던 재계인이다. 마찬가지로 田中라는 성이긴 하지만, 다나카와는 친척관계는 아니다. 東急(도큐)그룹 내의 수많은 회사들의 사장, 임원의 직함, 일시적이지만 越後(에치고)交通의 대표이사나, 越後觀光의 사장을 맡은 일도 있다. 越山会의 부회장자리까지 맡고 있어, 다나카 패밀리의 일원들 가운데에서도 다크호스로 손꼽히고 있다. 다나카 가쿠에이의 맹우인 小佐野賢次(오사노 겐지)와는 東急, 東亜国内航空 등으로 대단히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이 사람의 경우에도 정치 활동은 그다지 하지 않고 있는 것을 보았을 때, 아마도 ‘파이프’역으로 특정 정치가에게 돈을 전달해주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면 다음으로 표(3)-IV을 보도록 하자. 이것은 다나카系 5개 정치단체(越山会, 정치경제조사회, 재정조사회, 경제사회연구회, 新정경진흥회)가 다른 정치 단체에 기부를 한 것들의 리스트이다. 기부를 받은 쪽들은 거의 대부분이 의원이나 의원 후보자들의 후원단체들이다. 그러나 뭔가 기묘한 것이 하나 보이는데, 국제정세연구회가 바로 그것이다. 이것은 원래 내각 조사실에서 예산을 책정 받아, 국제정세의 연구를 하는 연구기관으로, 담당자가 越山会에서 기부금을 받은 적이 없다고 단언하고 있다. 연구기관이라는 성격상 기부를 받았건만 그것을 외부에 공표하고 싶지 않은 것일까, 아니면 越山会가 이름을 사칭한 것일까? 분명히 둘 중 하나일 것이다.
누누이 얘기하지만, 이상은 어디까지나 ‘표면’상으로 드러난 금액만을 갖고 얘기한 것으로, ‘음지’쪽의 돈들이 얼마만큼 그리고 어떻게 전달되는 지에 대해서 우리로서는 도무지 알 도리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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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은 그렇게까지 어려울 것은 없었습니다만, 표를 만드는게 어이없을 정도로 시간이 걸리더군요......인명에 대한 읽기는 도무지 답이 안 나오더군요..... 어쨌거나 그때의 심정을 짤방으로 표현한다면.....

표를 만들 때 제 심정이 딱 이랬습니다.......ㅠ.ㅠ 신은 죽었어어어~!!!!
지금 보고 있는 텍스트가 '문예춘추' 1974년 11월호를 복사한 것이었던지라 한자들 특히 인명에 쓰이는 자들이 뭉게져서는 잘 보이질 않더군요......OTL....근데 이보다 더 심한 것들이 기다리고 있다는게 더 압박입니다.....내가 뭔 생각으로 이걸 먼저 잡았을까? 딴 텍스트도 많은데.......(다치바나씨 빠돌이도 아니고.....) 알다가도 모를 일입니다......ㅠ.ㅜ
# by | 2007/02/05 07:42 | YoRoZU放談(!!!!!!!) | 트랙백(1) | 덧글(7)



대주주이면서 동시에 고액소득자.
우선 다나카 가쿠에이의 돈 관계. 그 전체적인 모습을 대략적으로 서술해보도록 하자.
우리 측의 조사결과로부터 다나카 가쿠에이에게는 네 가지의 측면이 있다는 것이 드러났으며,
政治家 田中角栄
實業家 田中角栄
資産家 田中角栄
虛業家 田中角栄
이라고 하는 네 가지가 바로 그것이다. 이 중에서 ‘虛業家’(허업가-부실기업가)라고 하는 그다지 귀에 익지 않은 표현을 쓴 까닭은 (그의) 관련 회사들 가운데에는 ‘유령회사’라고 밖에는 표현 할 수 없는 기업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나카 가쿠에이의 주변에는 ‘다나카 패밀리’라고 할 만한 복잡한 인맥이 구성되어 있어 위에서 밝힌 4가지 측면에 얽힌 관계들을 지탱하고 있다. 그 관계는 대단히 복잡하여 한마디로 잘라 설명할 수는 없으므로 느긋하게 차근차근 설명해 나가도록 하겠다.
네 가지중 어느 측면을 들더라도 우리 같은 외부인에게는 캐내는 데에 한계가 있었다. 그러나 동시에 어느 한 측면을 보더라도 우리가 조사해 낼 수 있는 한도 내에서 얻을 수 있었던 자료들에서 나오는 것들만으로도 뭔가 수상한 사실들을 지적해낼 수 있었다.
우선 다나카 가쿠에이는 고액 소득자라고 하는 이야기부터 시작해보면, 그가 세무서에 올린 신고 소득액은 다음과 같다.
昭和40年(1965년) : 3,857만 엔
41年(1966년) : 3,546만 엔
42年(1967년) : 5,008만 엔
43年(1968년) : 5,085만 엔
44年(1969년) : 6,822만 엔
45年(1970년) : 7,673만 엔
46年(1971년) : 7,037만 엔
47年(1972년) : 8,579만 엔
48年(1973년) : 7,797만 5,000엔
1973년에 대해서 이야기해본다면, 그 가운데 종리대신의 급여와 보너스로 약 1,700만 엔, 나머지 분의 소득이 무엇으로 이뤄져 있는지는 분명하게 알 수 없으나 주식의 재당금이 큰 부분을 차지할 것으로 추정된다. 일반에 드러난 것만을 놓고 따진다면 다음 목록에 나오는 회사들의 대주주로 알려져 있다.
理研ビニール 165만 株 (筆頭株主)
昭和子分子 35만 株 (個人筆頭株主)
越後交通 113만 株 (個人筆頭株主)
理研プラスチックス 15만 株 (個人筆頭株主)
일찍이 다나카는 越後交通의 주식을 365만 주(발행 주식의 36%) 보유하고 있었으나, 그 중에서 약 250만 주를 후술하게 될 관련 회사인 新星企業에 양도하고 있었다. 이 외에도 뒤에 기술하게 될 것과 같은 관련 기업들의 주주이기도 하다.
주식 외에, 다나카 가쿠에이의 유명한 재산으로는 예의 메지로(目白)에 있는 대저택, 가루이자와(軽井沢)에 있는 세 채의 별장 등이 있다. 메지로의 대저택은 약 2,400평, 시가 24억 엔(토지만을 갖고 따졌을 때), 가루이자와의 별장 세 채는 합쳐서 약 9,500평에 시가는 토지만으로도 4억 7000만 엔에 달한다는 견적이 나왔다. 메지로의 대저택에는 커다란 연못이 있어 백만 엔짜리 잉어가 우글거리고 있으며, 1개에 100만 엔도 넘는 정원석이 깔려있다고들 한다.
어찌되었거나 세간에 알려진 것만으로도 어마어마한 자산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이 전부 정정당당한 수단으로 손에 넣은 것이라면 그저 훌륭하다고 감탄할 뿐으로 별로 이러쿵저러쿵 말할 구석이 없지만, 여기서 ‘정정당당한’이라고 하는 것은 세금을 성실하게 납부했다고 하는 의미에서이다.
앞ㅇ에서 살펴본 다나카 가쿠에이의 소득이라는 것은 확실히 고액 소득자의 범주에 들어가지만 현재 일본의 부자들의 수준(억 단위의 소득을 자랑하는 이들이 여기저기 널린)을 놓고 생각하면 그리 대단한 수준은 아니다. 우리가 손에 넣은 자료에서 보자면 1973년의 다나카 가쿠에이는 대체로 위에서 대략 20,000번째 정도에 랭크된다고 추정된다. 그러나 다나카 만큼의 자산 획득자(대대로 물려받은 자산의 소유자는 제외한 의미의)가 그렇게 흔하다고는 생각할 수 없다.
저만한 저택을 짓고 그 정도의 생활을 영위해 나갈 수 있으려면 거기에 상응하는 운영비가 들게 마련이기 때문에 축재(蓄財) 일변도라는 소릴 들어도 할 말이 없게 된다.
아래에 메지로의 저택과 가루이자와의 취득 일자를 기록해 두었으니 방금 전에 기술한 연간 신고 소득과 비교해보시길 바란다.
昭和28年(1953년) 8월 目白 490평
33年(1958년) 8월 目白 271평
36年(1961년) 5월 軽井沢 607평
37年(1962년) 3월~5월 目白 292평
39年(1964년) 2월 目白 109평
40年(1965년) 6월 目白 85평
41年(1966년) 1월 目白 약 117평
42年(1967년) 3월 目白 973평
47年(1972년) 5월 軽井沢 5,711평
7월 軽井沢 991평
8월 軽井沢 2003평
메지로의 지가는 시가로 평당 100만 엔이며, 가루이자와의 경우 평당 5~6만 엔이라고 한다.
자산은 법인 병의
만약에 보통 사람들이 이런 거액이 들어가는 것을 구입한다면 세무서에서 득달같이 달려와서는 (구입에 사용한) 자금의 출처를 집요하게 조사했을 것이 분명하다. 다나카의 경우라면 정치자금(비과세)를 사적으로 사용하지 않았을까.(사용했다면 그 부분은 기타 소득으로 간주되어 정정신고-更正申告-가 되었을 것이다.)라고 하는 점에 대하여 철저하게 추궁을 받지 않으면 안 되었을 터이다. 그러나 국세청에 문의해 본 결과로는 「성실하게 신고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라는 답변뿐이었다. 우리가 이 점에 대하여 의심을 품는 것이 타당할까, 아니면 아무런 의문도 갖자 않았던 국세청 쪽일까. 다시 한 번, 다나카의 신고 소득과 토지 구입의 리스트를 봐주시기 바란다. 참고로 昭和42(1967)년에는 니가타(新潟)의 생가를 공사비 2,500만 엔을 들여 노송나무로 호화롭게 개축하고 있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우리를 놀라게 한 것은 가루이자와(軽井沢)의 별장 구입의 날짜이다. 1972년 5월, 7월, 8월이라고하면 그가 거액의 정치자금을 움직여 ‘전력을 기울여’ 총재의 자리를 획득하기위해 활동하던 시기의 직전과 직후이다. (금전적으로나, 심리적으로나) 이 무슨 여유 만만함이란 말인가 라고 감탄하는 동시에 총재선거를 위해 모은 총알(자금)이 남아 돌 정도였던 것인가라고 생각하고 싶어지는 것은 덜떨어진 억측일까?
그러면 여기서 한 가지 염두에 두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은, 그의 토지 구입 리스트 중에서 아래의 것들은 다나카 가쿠에이 그 자신의 명의가 아니라는 점이다.
目白 42年(1967년)分 973평
軽井沢 47年(1972년) 5월分 5,911평
또한 33年(1958년) 구입分 가운데 161평은 같은 해 연말에 근처에서 인쇄회사를 경영하고 있던 長宗泰造(나가무네 다이조)씨에게 팔려, 1961년이 되어서야 ‘관련회사’인 室町産業이 다시 사들였다.
위에 기술한 두 토지 거래의 명의는 전자의 경우 長岡ビルディング 이며, 후자는 東京ニューハウス로 되어있었다. 이 두 회사가 같은 회사라고 하는 것은 참으로 기묘한 일이다. 회사의 창설부터 이야기를 애보도록 하겠다.
昭和36年(1961년) 다나카 가쿠에이는 日本電建의 사장으로 취임했다. 주식의 거의 전부를 손에 넣어, 뒤에서 언급하게 될 다나카 패밀리를 거느리고는 경영진에 앉혔다. 이른바 '적대적 M&A'인 셈이다. 이 사건은 다나카의 경력, 특히 그 재산의 축적 과정에 있어 가장 큰 발판(스프링보드)가 되었으므로 좀 더 자세히 알아보기로 한다.
日本電建의 사장으로 취임하고 3개월 뒤에 新日本電建이라는 회사가 설립되어 다나카 자신이 대표이사에 취임하였다.(약 1년간) 자본금은 1,250만 엔으로 긴자(銀座)에 본사가 위치했던 이 회사는 日本電建의 수탁업무, 토지의 조성・취득・판매 등을 영업 목적으로 하고 있었다. 한마디로 日本電建의 자회사였던 것이다.
그러던 것이 이듬해 영업 목적에서 「日本電建의 수탁업무」라는 항목을 삭제하고는 회사명을 長岡ビルディング으로 개명하게 된다. 다나카가 퇴임한 뒤 심복인 入内島金一(이리우치지마 가네히토 - 다나카와는 태평양 전쟁 이전, 수습 점원 시절부터의 친구로 이 인물에 대해서는 후술할 것임)이 중역 자리에 계속 남아있었다.
39年(1964년), 그때가지 남겨져 있던 舊 電建계통의 중역들은 전부 퇴진하고 이사직은 다나카 패밀리로 굳어져 入内島金一가 대표 이사 자리에 앉게 되었다. 그리고 42年(1967년) 자본금을 3,750만 엔으로 증자하는 것과 함께 이 회사는 메지로의 다나카 저택 안으로 본점을 옮겨 東京ニューハウス라고 또 다시 사명을 바꿔버렸던 것이다. 앞에서 얘기한 다나카 저택 토지의 일부를 구입한 것이 이 직전의 일이다.
그렇다고 하면 그냥 딱 잘라서 다나카 저택이라고 하는 것의 일부는 東京ニューハウス라고 하는 회사의 사유지 위에 세워져있는 것인가라고 상상이 될 것이지만 터무니가 없다. 長岡ビルディング의 사유지는 다나카 저택에서 가장 후미진 곳으로 항공사진에서 보면 숲이 우거져있다.
다나카 저택에는 건물 등기에 의하면 4개의 건물이 있어, 사무소나 창고도 있으나 모두가 1954년과 63년에 다나카 가쿠에이의 명의로 구입, 등기까지 마친 상태였다.
아마도 형식상으로는 東京ニューハウス가 다나카에게 광대한 정원을 임대해주어 그로부터 사무소(이것이 필요하다고 할 때의 얘기이지만)의 일부를 차용하고 있다는 체제를 취하고 있는 것이리라고 생각된다.
그 뒤 東京ニューハウス는 1972년 4월에 1억5천만 엔으로 증자, 그 3개월 뒤에 자본금을 3억 엔으로 재차 증자를 하는 등 돌연히 눈이 아찔해질 정도로 자본금이 움직였다. 그리고 그 사이에 예의 가루이자외의 별장을 구입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전에 이 별장을 소유하고 있던 西北産業이라는 부동산회사는 별장을 3억 천만 엔어치의 차입금의 저당으로 잡히고 있었기 때문에 대략 그 정도 선이 매매가격일 것이다. 결국 그 금액 분을 대부분 자본금의 증자로 조달했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것으로 대략 이해가 되셨을 것이라 생각한다. 東京ニューハウス라고 하는 것은 다나카 가쿠에이의 자산을 법인 명의로 소유하게끔 하기 위한 회사인 것이었다. 진짜 이 별장을 팬션으로 하여 영업을 하려고 했다고 생각할 바보는 없을 것이다. 물론 이러한 경우 형식상으로야 그렇게 되어있겠지만서도.
# by | 2007/01/07 09:50 | YoRoZU放談(!!!!!!!)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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