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나카 가쿠에이 연구- 그 금맥과 인맥 Pt.5





  출격할 때마다 쥔장-오군-에게 기도를 올리는 코모도양 (절반만 농담입니다....ㅎㅎㅎ)




  ◆군을 검색하면 야동이 떳다고 하길래 무심코 '오군'을 쳐보니  뜻밖에도  서부 아프리카(주로 나이지리아)쪽에 있는 요루바족의 '철(및 철로 만들이진 물건들)과 전쟁의 신'이 나오더군요 (진 여신전생에도 나옵니다만 거기선 레벨이 좀 낮은 파괴신이더군요 그 외의 검색 결과라면 나이지리아 서부 해안에 위치한 州의 이름이기도 하고)  의외로 택시 기사나 이발사들에게서도 숭앙받는 신이라더군요 (가위나 택시나 둘 다 철로 만든 물건이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 이유인데.......거 참......)
 
  그나저나 짤방의 원전인 브레인 파워드에 등장하는 코모도양......저렇게 봐서는 그 누구라도 흑인이라고는 보기가 함들지요(카리브 해 지역 출신이라고도 생각할 여지가 없는 건 아니지만 계속 요루바족 운운한다면 아무래도 서부 아프리카 특히 나이지리아쪽을 의심하게 되는데 저 외모는...??!!?).....뭐, 이건 역시 캐릭터 디자이너이신 이노마타 무츠미씨 탓이지만.....(우주황자나 윈다리아의 일러스트들은 무지 좋아합니다만...ㅎㅎㅎ)  어쟀거나 진짜로 저런 신도가 있다면 나름 괜찮을지도.......
(많이 외로웠구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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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포스팅은 '문예춘추' 1974년 11월호에 게제된 다치바나 다카시씨의  '다나카 가쿠에이 연구 - 그 금맥과 인맥 '을 번역한(말이 번역이지 실제론  대전차 지뢰-혹은 항공 폭탄을 개조해서 만든 사기성 지뢰-급의 오역이 곳곳에 도사리고있는) 것입니다. 어디까지나 1974년의 그 텍스트를 번역(이젠 더 창피할 것도 없지??)한 것이므로 여기에 대해서 딴지를 거시면 참으로 '골룸'하오니......이 점을 유념해주시길(실은 쥔장이 무식하고 게으른건 아니고??)......



 

대주주이면서 동시에 고액소득자.   



  우선 다나카 가쿠에이의 돈 관계. 그 전체적인 모습을 대략적으로 서술해보도록 하자.

  우리 측의 조사결과로부터 다나카 가쿠에이에게는 네 가지의 측면이 있다는 것이 드러났으며,

      

政治家 田中角栄

實業家 田中角栄

資産家 田中角栄

 虛業家 田中角栄 


이라고 하는 네 가지가 바로 그것이다. 이 중에서 ‘虛業家’(허업가-부실기업가)라고 하는 그다지 귀에 익지 않은 표현을 쓴 까닭은 (그의) 관련 회사들 가운데에는 ‘유령회사’라고 밖에는 표현 할 수 없는 기업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나카 가쿠에이의 주변에는 ‘다나카 패밀리’라고 할 만한 복잡한 인맥이 구성되어 있어 위에서 밝힌 4가지 측면에 얽힌 관계들을 지탱하고 있다. 그 관계는 대단히 복잡하여 한마디로 잘라 설명할 수는 없으므로 느긋하게 차근차근 설명해 나가도록 하겠다.

  네 가지중 어느 측면을 들더라도 우리 같은 외부인에게는 캐내는 데에 한계가 있었다. 그러나 동시에 어느 한 측면을 보더라도 우리가 조사해 낼 수 있는 한도 내에서 얻을 수 있었던 자료들에서 나오는 것들만으로도 뭔가 수상한 사실들을 지적해낼 수 있었다.

  우선 다나카 가쿠에이는 고액 소득자라고 하는 이야기부터 시작해보면, 그가 세무서에 올린 신고 소득액은 다음과 같다.


   昭和40年(1965년) : 3,857만 엔     

    41年(1966년) : 3,546만 엔

    42年(1967년) : 5,008만 엔

    43年(1968년) : 5,085만 엔

    44年(1969년) : 6,822만 엔

    45年(1970년) : 7,673만 엔

    46年(1971년) : 7,037만 엔

    47年(1972년) : 8,579만 엔

           48年(1973년) : 7,797만 5,000엔

  

  1973년에 대해서 이야기해본다면, 그 가운데 종리대신의 급여와 보너스로 약 1,700만 엔, 나머지 분의 소득이 무엇으로 이뤄져 있는지는 분명하게 알 수 없으나 주식의 재당금이 큰 부분을 차지할 것으로 추정된다. 일반에 드러난 것만을 놓고 따진다면 다음 목록에 나오는 회사들의 대주주로 알려져 있다.

  

   理研ビニール   165만 株 (筆頭株主)

      昭和子分子  35만 株  (個人筆頭株主)

       越後交通       113만 株  (個人筆頭株主)

              理研プラスチックス 15만 株 (個人筆頭株主)


  일찍이 다나카는 越後交通의 주식을 365만 주(발행 주식의 36%) 보유하고 있었으나, 그 중에서 약 250만 주를 후술하게 될 관련 회사인 新星企業에 양도하고 있었다. 이 외에도 뒤에 기술하게 될 것과 같은 관련 기업들의 주주이기도 하다.

  주식 외에, 다나카 가쿠에이의 유명한 재산으로는 예의 메지로(目白)에 있는 대저택, 가루이자와(軽井沢)에 있는 세 채의 별장 등이 있다. 메지로의 대저택은 약 2,400평, 시가 24억 엔(토지만을 갖고 따졌을 때), 가루이자와의 별장 세 채는 합쳐서 약 9,500평에 시가는 토지만으로도 4억 7000만 엔에 달한다는 견적이 나왔다. 메지로의 대저택에는 커다란 연못이 있어 백만 엔짜리 잉어가 우글거리고 있으며, 1개에 100만 엔도 넘는 정원석이 깔려있다고들 한다.

  어찌되었거나 세간에 알려진 것만으로도 어마어마한 자산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이 전부 정정당당한 수단으로 손에 넣은 것이라면 그저 훌륭하다고 감탄할 뿐으로 별로 이러쿵저러쿵 말할 구석이 없지만, 여기서 ‘정정당당한’이라고 하는 것은 세금을 성실하게 납부했다고 하는 의미에서이다.

  앞ㅇ에서 살펴본 다나카 가쿠에이의 소득이라는 것은 확실히 고액 소득자의 범주에 들어가지만 현재 일본의 부자들의 수준(억 단위의 소득을 자랑하는 이들이 여기저기 널린)을 놓고 생각하면 그리 대단한 수준은 아니다. 우리가 손에 넣은 자료에서 보자면 1973년의 다나카 가쿠에이는 대체로 위에서 대략 20,000번째 정도에 랭크된다고 추정된다. 그러나 다나카 만큼의 자산 획득자(대대로 물려받은 자산의 소유자는 제외한 의미의)가 그렇게 흔하다고는 생각할 수 없다.

  저만한 저택을 짓고 그 정도의 생활을 영위해 나갈 수 있으려면 거기에 상응하는 운영비가 들게 마련이기 때문에 축재(蓄財) 일변도라는 소릴 들어도 할 말이 없게 된다.

  아래에 메지로의 저택과 가루이자와의 취득 일자를 기록해 두었으니 방금 전에 기술한 연간 신고 소득과 비교해보시길 바란다.


昭和28年(1953년) 8월 目白 490평

     33年(1958년) 8월 目白  271평

     36年(1961년) 5월 軽井沢 607평    

     37年(1962년) 3월~5월 目白 292평

     39年(1964년) 2월 目白 109평

     40年(1965년) 6월 目白 85평

     41年(1966년) 1월 目白 약 117평

     42年(1967년) 3월 目白 973평

     47年(1972년) 5월 軽井沢 5,711평

                        7월 軽井沢 991평

                        8월 軽井沢 2003평


   메지로의 지가는 시가로 평당 100만 엔이며, 가루이자와의 경우 평당 5~6만 엔이라고 한다.




자산은 법인 병의


  만약에 보통 사람들이 이런 거액이 들어가는 것을 구입한다면 세무서에서 득달같이 달려와서는 (구입에 사용한) 자금의 출처를 집요하게 조사했을 것이 분명하다. 다나카의 경우라면 정치자금(비과세)를 사적으로 사용하지 않았을까.(사용했다면 그 부분은 기타 소득으로 간주되어 정정신고-更正申告-가 되었을 것이다.)라고 하는 점에 대하여 철저하게 추궁을 받지 않으면 안 되었을 터이다. 그러나 국세청에 문의해 본 결과로는 「성실하게 신고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라는 답변뿐이었다. 우리가 이 점에 대하여 의심을 품는 것이 타당할까, 아니면 아무런 의문도 갖자 않았던 국세청 쪽일까. 다시 한 번, 다나카의 신고 소득과 토지 구입의 리스트를 봐주시기 바란다. 참고로 昭和42(1967)년에는 니가타(新潟)의 생가를 공사비 2,500만 엔을 들여 노송나무로 호화롭게 개축하고 있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우리를 놀라게 한 것은 가루이자와(軽井沢)의 별장 구입의 날짜이다. 1972년 5월, 7월, 8월이라고하면 그가 거액의 정치자금을 움직여 ‘전력을 기울여’ 총재의 자리를 획득하기위해 활동하던 시기의 직전과 직후이다. (금전적으로나, 심리적으로나) 이 무슨 여유 만만함이란 말인가 라고 감탄하는 동시에 총재선거를 위해 모은 총알(자금)이 남아 돌 정도였던 것인가라고 생각하고 싶어지는 것은 덜떨어진 억측일까?

  그러면 여기서 한 가지 염두에 두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은, 그의 토지 구입 리스트 중에서 아래의 것들은 다나카 가쿠에이 그 자신의 명의가 아니라는 점이다.


 目白 42年(1967년)分  973평

 軽井沢 47年(1972년) 5월分 5,911평


또한 33年(1958년) 구입分 가운데 161평은 같은 해 연말에 근처에서 인쇄회사를 경영하고 있던 長宗泰造(나가무네 다이조)씨에게 팔려, 1961년이 되어서야 ‘관련회사’인 室町産業이 다시 사들였다.

  위에 기술한 두 토지 거래의 명의는 전자의 경우 長岡ビルディング 이며, 후자는 東京ニューハウス로 되어있었다. 이 두 회사가 같은 회사라고 하는 것은 참으로 기묘한 일이다. 회사의 창설부터 이야기를 애보도록 하겠다.

  昭和36年(1961년) 다나카 가쿠에이는 日本電建의 사장으로 취임했다. 주식의 거의 전부를 손에 넣어, 뒤에서 언급하게 될 다나카 패밀리를 거느리고는 경영진에 앉혔다. 이른바 '적대적 M&A'인 셈이다. 이 사건은 다나카의 경력, 특히 그 재산의 축적 과정에 있어 가장 큰 발판(스프링보드)가 되었으므로 좀 더 자세히 알아보기로 한다.

  日本電建의 사장으로 취임하고 3개월 뒤에 新日本電建이라는 회사가 설립되어 다나카 자신이 대표이사에 취임하였다.(약 1년간) 자본금은 1,250만 엔으로 긴자(銀座)에 본사가 위치했던 이 회사는 日本電建의 수탁업무, 토지의 조성・취득・판매 등을 영업 목적으로 하고 있었다. 한마디로 日本電建의 자회사였던 것이다.

  그러던 것이 이듬해 영업 목적에서 「日本電建의 수탁업무」라는 항목을 삭제하고는 회사명을 長岡ビルディング으로 개명하게 된다. 다나카가 퇴임한 뒤 심복인 入内島金一(이리우치지마 가네히토 - 다나카와는 태평양 전쟁 이전, 수습 점원 시절부터의 친구로 이 인물에 대해서는 후술할 것임)이 중역 자리에 계속 남아있었다.

  39年(1964년), 그때가지 남겨져 있던 舊 電建계통의 중역들은 전부 퇴진하고 이사직은 다나카 패밀리로 굳어져 入内島金一가 대표 이사 자리에 앉게 되었다. 그리고 42年(1967년) 자본금을 3,750만 엔으로 증자하는 것과 함께 이 회사는 메지로의 다나카 저택 안으로 본점을 옮겨 東京ニューハウス라고 또 다시 사명을 바꿔버렸던 것이다. 앞에서 얘기한 다나카 저택 토지의 일부를 구입한 것이 이 직전의 일이다.

  그렇다고 하면 그냥 딱 잘라서 다나카 저택이라고 하는 것의 일부는 東京ニューハウス라고 하는 회사의 사유지 위에 세워져있는 것인가라고 상상이 될 것이지만 터무니가 없다. 長岡ビルディング의 사유지는 다나카 저택에서 가장 후미진 곳으로 항공사진에서 보면 숲이 우거져있다.

  다나카 저택에는 건물 등기에 의하면 4개의 건물이 있어, 사무소나 창고도 있으나 모두가 1954년과 63년에 다나카 가쿠에이의 명의로 구입, 등기까지 마친 상태였다.

  아마도 형식상으로는 東京ニューハウス가 다나카에게 광대한 정원을 임대해주어 그로부터 사무소(이것이 필요하다고 할 때의 얘기이지만)의 일부를 차용하고 있다는 체제를 취하고 있는 것이리라고 생각된다.

  그 뒤 東京ニューハウス는 1972년 4월에 1억5천만 엔으로 증자, 그 3개월 뒤에 자본금을 3억 엔으로 재차 증자를 하는 등 돌연히 눈이 아찔해질 정도로 자본금이 움직였다. 그리고 그 사이에 예의 가루이자외의 별장을 구입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전에 이 별장을 소유하고 있던 西北産業이라는 부동산회사는 별장을 3억 천만 엔어치의 차입금의 저당으로 잡히고 있었기 때문에 대략 그 정도 선이 매매가격일 것이다. 결국 그 금액 분을 대부분 자본금의 증자로 조달했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것으로 대략 이해가 되셨을 것이라 생각한다. 東京ニューハウス라고 하는 것은 다나카 가쿠에이의 자산을 법인 명의로 소유하게끔 하기 위한 회사인 것이었다. 진짜 이 별장을 팬션으로 하여 영업을 하려고 했다고 생각할 바보는 없을 것이다. 물론 이러한 경우 형식상으로야 그렇게 되어있겠지만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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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뭔가 묘하게 문장 만들기가 까다롭더군요. 뭐랄까 머리 속에서는 일본어로 이해가 되는데 막상 한국어로 문장을 만들려니 그게 녹록치 않은 경우가 많더군요 이전의 챕터보다도. 그건 그만큼 다치바나씨가 일본어 문장을 일본어로 매우 잘 썼다는 얘기겠지만, 그 얘길 반대로 하면 역시 쥔장의 일어 실력이 그만큼 부실하다는 것의 증명이겠지요.  그 전에 국어 작문 연습부터 다시 해야하겠습니다만. OTL
 
  그리고 인명도 이게 맞는지 의심스러운게, 일반적으론 이게 맞다고 하더라도 꼭 아닌 케이스들이 여기저기서 튀어나오거든요.  이를테면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남자 성우이신 오오츠카 호우츄( 大塚芳忠 )씨의 경우 원래 오오츠카 요시타다가 맞지만 여기저기서 호우츄로 읽는 경우가 많아 아예 이쪽으로  예명이 굳어진 케이스로  그 후에도 꽤나 혼동되고 있으니......제대로 된 명함을 받기 전에는 '세상에 맏을 놈 하나 없네.'스러운 경우랄까요...... 그나마 유명인들이야 확인하기나 쉽지........(휘유.......)





P.S : 전국 란스는 2회차 클리어 후  봉인중.........다케다....덜덜덜.........기마대가 무서워효(ㅠ.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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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재천너부리 | 2007/01/07 09:50 | YoRoZU放談(!!!!!!!) | 덧글(2)

Commented by 크로이즈와 at 2007/01/07 10:41
여신전생에서는..허접한녀석이라도 애정으로 키우면 강해집니다./ 단지 노가다가 빡셀뿐.;
Commented by 집쥔 at 2007/01/07 20:01
맟습니다. ㅎㅎ 저도 너부리님 생각에 100% 동감입니다. 분명 어느 정도 일본어 독해가 가능한 시점이 되면 문장 자체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데는 문제가 없습니다만 그걸 한국어로 옮기는 과정에서 결정적으로 '일본어 문장' 같이 되거든요. - 소위 번역체라고 불리는 한국 어법과는 다소 괴리감이 있는 기이한(?) 문체 ㅎㅎ -

이걸 깨닿고 가능한 자제하려고 번역문의 경운 몇번이고 퇴고를 합니다만 합니다만 결국 언제나 느끼는건 " 번역은 어려워!! " orz


P.S 그러고보니 티안무님 글이 좀 그렇죠.........^^; (뽀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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